나라의 빚을 갚는 모금과 우리 물건을 사자는 운동은 모두 경제적 자립을 내세웠지만 같은 운동은 아닙니다. 무엇을 위해 돈을 모으는지부터 읽어야 합니다.
79회 35번은 일본에 진 차관과 금연 모금을 단서로 국채보상운동을 찾고, 그 운동의 확산을 도운 언론을 묻습니다.

1. 결정적 단서
자료의 중심은 나라의 빚을 국민의 성금으로 갚자는 주장입니다. 담배를 끊어 아낀 돈을 모으자는 방식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의 대표적인 단서입니다.
국채는 국가가 진 빚과 연결해 읽으세요. 토산품을 생산·소비하자는 물산장려운동이나 대학 설립을 위한 민립대학 운동과 모금의 목적이 다릅니다.
2. 정답 근거
② 대한매일신보 등의 지원으로 확산됐다는 설명이 맞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되어 신문의 보도와 모금 참여를 통해 전국으로 퍼졌습니다.
당시 차관은 일본의 경제적 침탈과 연결된 문제였습니다. 빚을 갚아 국권을 지키려는 의도와 국민 모금이라는 방식이 결합한 운동으로 이해하면 단순한 금연 캠페인과 구별할 수 있습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 대한천일은행은 1899년에 설립됐습니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계기로 설립된 은행이 아닙니다. |
| ③ | 조선민립대학기성회의 모금은 1923년 민립대학 설립 운동입니다. 모금 대상이 국가의 빚이 아니라 대학 설립 자금입니다. |
| ④ |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는 1923년 시작된 형평운동입니다. 경제적 국권 수호 운동과 사회적 차별 철폐 운동을 구별해야 합니다. |
| ⑤ | 자작회·토산애용부인회는 1920년대 물산장려운동과 연결됩니다. 빚 상환보다 토산품 생산과 소비가 핵심입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국채보상=1907년 빚 갚기, 물산장려=1920년대 토산품 애용, 민립대학=1923년 대학 설립, 형평=1923년 신분 차별 철폐로 목적을 붙여 정리하세요.
모금이라는 표현이 반복되면 누가 돈을 걷었는지만 보지 말고 돈의 용도를 확인하세요. 금연·차관·국권이 함께 나오면 국채보상운동, 교육기관 설립이 나오면 민립대학 운동으로 좁힐 수 있습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35번. 정답 ②.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