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품을 사는 운동과 빚을 갚는 운동은 모두 경제와 관련됩니다. 그래서 ‘민족 경제를 지킨다’는 큰 설명만으로는 물산장려운동과 국채보상운동을 가르기 어렵습니다.
제76회 심화 39번에서는 무엇에 돈을 쓰려 했는지를 읽어야 합니다. 조만식과 평양이라는 인물·지역 단서도 함께 확인합니다.

1. 결정적 단서: 조만식·평양·내 살림 내 것으로
지문은 평양에서 조만식 등이 운동을 시작했고, ‘내 살림 내 것으로’라는 구호를 내세웠다고 설명합니다. 조선인이 생산한 물건을 이용해 민족 산업을 육성하려 한 물산 장려 운동입니다.
자본가의 이익을 앞세운다는 비판도 단서입니다. 이 운동을 모든 계층이 같은 이해관계로 지지했다고 단순화해서는 안 됩니다. 민족 산업 육성이라는 목표와 그 효과를 둘러싼 비판이 함께 존재했습니다.
반면 국채 보상 운동은 일본에 진 국채를 갚아 국권을 지키려는 운동입니다. 국산품 소비와 산업 육성인지, 국채 상환을 위한 모금인지 목적을 분리하세요.
2. 정답 근거
정답은 ③ 자작회와 토산 애용 부인회 등이 활동했다입니다. 국산품 애용과 소비 실천을 뒷받침한 조직들이 물산 장려 운동과 연결됩니다.
‘자작’과 ‘토산’은 운동의 방향을 드러내는 말입니다. 여기서 자작회를 토지 제도의 자작농과 연결하면 안 됩니다. 선지를 지문의 국산품 사용이라는 맥락 안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물산 장려 운동은 1920년 평양에서 시작되어 1923년 서울의 조선 물산 장려회 결성 등을 통해 확산되었습니다. 시작 지역과 전국적 확산 단계가 달라 자료에 여러 연도가 나올 수 있습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의 핵심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대한매일신보의 후원 | 1907년 국채 보상 운동과 연결됩니다. 신문의 지원이라는 일반 표현보다 국채 상환 운동이라는 짝을 기억하세요. |
| ② 순종의 인산일 | 1926년 6·10 만세 운동입니다. 장례일을 계기로 만세 시위를 벌인 운동이지 국산품 소비 운동이 아닙니다. |
| ④ 신간회의 진상 조사단 |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지원한 활동입니다. 신간회와 학생 운동을 연결해야 합니다. |
| ⑤ 강주룡의 을밀대 농성 | 1931년 평양의 노동 운동입니다. 평양이라는 지역이 같아도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투쟁과 물산 장려 운동은 다릅니다. |
지역 하나가 겹친다고 같은 운동은 아닙니다. ⑤를 제외할 때도 평양이라는 공통점보다 주체·요구·방법의 차이가 근거가 됩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문제가 바뀌면 목적 → 실천 방법 → 참여 조직 순으로 읽으세요. 국채 상환·모금은 국채 보상, 민족 산업·국산품 애용은 물산 장려로 구분합니다.
물산 장려 운동의 의의와 한계도 분리해 설명해 보세요. 경제적 자립을 지향했다는 사실이 곧 모든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동일한 이익이 돌아갔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번 문항은 ‘조만식·평양 → 물산 장려 → 자작회·토산 애용 부인회’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인물 이름 없이 구호만 제시되어도 같은 연결을 복원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6회 심화 39번.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