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에 왕건이 나온다고 답이 늘 고려 태조는 아닙니다. 왕건이 왕이 되기 전에는 궁예 아래에서 활동했다는 사실을 읽어야 합니다.
제77회 심화 9번은 왕건에게 명령하는 사람과 명령을 받는 사람을 나누어 보는 문제입니다. 문장의 주어를 바르게 잡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1. 결정적 단서: 왕건보다 윗자리에 있는 군주와 철원
자료에서 왕건에게 일을 맡기는 군주와 철원이라는 지명이 제시됩니다. 이 인물은 후고구려를 세우고 철원을 중심으로 세력을 운영한 궁예입니다.
왕건이라는 유명한 이름이 보이더라도 질문의 (가)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등장인물과 질문 대상이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궁예에 대한 평가가 담긴 사료라도 평판만으로 인물을 추측할 필요는 없습니다. 왕건과의 관계, 수도, 제도처럼 확인 가능한 사건 단서를 우선해서 읽으세요.
2. 정답 근거
정답은 ② 광평성을 설치했다입니다. 궁예는 904년 국호를 마진으로 바꾸며 광평성 등 중앙 관제를 정비했습니다.
궁예의 국호 변화는 후고구려·마진·태봉으로 정리합니다. 918년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운 것은 그 뒤의 일입니다. 광평성을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뒤 처음 만든 기구로 옮기지 마세요.
후삼국 시기 제도는 뒤의 고려와 연결되는 요소가 있어 더 주의해야 합니다. 이번 문항은 제도를 ‘누가 설치했는지’를 묻는 인물 문제입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의 핵심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안승을 보덕왕으로 책봉 | 신라 문무왕의 활동입니다. 고구려 부흥 운동 세력을 포섭한 7세기의 일로 후삼국보다 앞섭니다. |
| ③ 소손녕과 담판하여 강동 6주 확보 | 993년 서희의 외교 담판입니다. 고려 성종 때 거란의 침입에 대응한 일입니다. |
| ④ 경순왕을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 | 고려 태조 왕건의 활동입니다. 신라가 고려에 귀부한 뒤 지배층을 포섭한 정책입니다. |
| ⑤ 경애왕을 죽게 한 경주 공격 | 927년 후백제 견훤의 활동입니다. 궁예·왕건·견훤을 각각 구분해야 합니다. |
④는 지문에 왕건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선택하기 쉬운 오답입니다. 왕건의 실제 업적이 맞더라도 질문 대상이 궁예라면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후삼국 인물은 궁예–광평성·마진·태봉, 왕건–고려 건국·사심관, 견훤–후백제·경주 공격으로 구분해 보세요. 세 사람의 관계를 한 줄의 연표로 함께 보아야 합니다.
문제에 유명 인물이 여러 명 나오면 각 이름 옆에 ‘명령한 사람’, ‘신하’, ‘상대국 왕’처럼 역할을 붙이세요. 주어를 바꾸어 읽는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철원’만으로 고려 전체의 수도를 떠올리기보다 궁예의 활동 맥락을 확인하세요. 이번 문항의 연결은 왕건의 상관인 궁예를 찾고 광평성으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7회 심화 9번.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