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단체가 활동하기도 전에 그 단체가 사건을 주도할 수는 없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비슷한 독립운동 선지를 고를 때 놓치기 쉬운 기준입니다.

제77회 심화 38번은 신간회의 활동을 묻습니다. 1927년 결성이라는 기준점을 활용하면 6·10 만세 운동을 다룬 오답을 빠르게 가를 수 있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7회 심화 38번 문제
국사편찬위원회 · 제77회 심화 38번

1. 결정적 단서: 민족 협동 전선, 민중 대회, 해소

자료의 단체는 민족주의계와 사회주의계가 협력해 결성한 신간회입니다. 민중 대회를 준비한 활동과 1931년 해소에 관한 내용도 신간회의 역사와 연결됩니다.

신간회는 1927년 결성되었습니다. 이후 전국에 지회를 두고 여러 사회 문제와 항일운동에 관여했습니다. 이 결성 연도를 선지 판단의 출발점으로 삼으세요.

‘좌우가 협력했다’는 설명만으로 광복 이후의 좌우 합작 위원회와 혼동하면 안 됩니다. 신간회는 일제강점기의 민족 협동 전선 조직입니다.

2. 정답 근거

정답은 ⑤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했다입니다. 신간회는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지원했고, 이를 알리기 위한 민중 대회도 추진했습니다.

학생들의 항일운동과 이를 지원한 신간회의 활동은 구분해서 표현해야 합니다. 신간회가 지원했다고 해서 광주에서 운동이 시작된 모든 과정을 신간회가 직접 조직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단체의 역할을 정확히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에서는 조사단 파견이라는 구체적인 지원 활동이 정답 근거입니다.

3. 오답 분석

선지의 핵심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① 개벽·신여성 등의 발행천도교계의 출판 활동과 연결됩니다. 신간회라는 민족 협동 전선 조직의 대표 활동으로 옮겨 적으면 안 됩니다.
② 중추원 개편을 통한 의회 설립 추진1898년 독립협회의 활동입니다. 대한제국 시기의 정치 개혁 요구입니다.
③ 한인 국방 경위대 편성재미 한족 연합 위원회의 활동과 연결됩니다. 국내 신간회와 미주 한인 단체를 구별해야 합니다.
④ 6·10 만세 운동 주도6·10 만세 운동은 1926년, 신간회 결성은 1927년입니다. 설립 전 사건을 신간회의 활동으로 볼 수 없습니다.

④는 두 사건 모두 민족 협동의 흐름으로 설명되기도 해서 혼동하기 쉽습니다. 역사적 배경의 연관성과 특정 단체가 직접 수행한 활동은 다릅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1926 6·10 만세 운동 → 1927 신간회 결성 → 1929 광주 학생 항일 운동 지원 → 1931 해소의 순서로 놓아 보세요. 연표 네 칸만으로도 여러 선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단체 문제에서는 설립 전과 해산·해소 후의 사건을 먼저 제외하는 방법이 유용합니다. 그 다음 지역과 활동 방식까지 확인하면 됩니다.

‘광주 학생 운동’이라는 단서가 나오면 신간회의 조사단과 민중 대회 추진을 함께 떠올리세요. 사건 자체와 지원 단체의 역할을 나누어 말할 수 있으면 표현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7회 심화 38번.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