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당나라 장수가 나와도 신라의 편일 때와 적일 때는 다릅니다. 이 문항은 전투 이름을 많이 아는 것보다 두 기록 속 신라와 당의 관계를 구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제77회 심화 6번은 백제 공격을 준비하는 기록과 기벌포 전투 기록 사이의 사건을 묻습니다. 양 끝의 연도를 정하면, 비슷해 보이는 삼국 시대 선지를 차례로 제외할 수 있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7회 심화 6번 문제
국사편찬위원회 · 제77회 심화 6번

1. 결정적 단서: 소정방과의 합동 공격, 설인귀와의 전투

(가)에서는 김법민이 소정방을 맞이하고 백제 도성을 함께 공격할 날짜를 의논합니다. 의자왕의 백제를 공격하는 660년의 상황입니다. 김법민은 훗날 문무왕이지만, 여기서는 태자로 등장합니다.

(나)에서는 시득이 기벌포에서 설인귀의 군대와 싸웁니다. 신라와 당이 협력하는 장면이 아니라 676년 나당 전쟁의 기벌포 전투입니다. 따라서 문제의 범위는 660년과 676년 사이입니다.

인물의 일생을 통째로 떠올리기보다 기록에 적힌 현재의 지위와 행동을 읽으세요. ‘김법민’만 보고 곧바로 문무왕 재위 중이라고 판단하면 시작점을 잘못 잡을 수 있습니다.

2. 정답 근거

정답은 ② 복신과 도침이 부여풍을 왕으로 추대한 일입니다. 백제 중앙 정부가 무너진 뒤 복신·도침 등은 부흥 운동을 전개했고, 왜에 있던 왕자 부여풍을 맞아 왕으로 세웠습니다.

백제 멸망은 부흥 운동이 끝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수도가 함락되고 의자왕이 항복한 뒤에도 백제를 다시 세우려는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따라서 ‘660년 멸망 뒤의 백제 활동’은 모순이 아닙니다.

부흥 운동은 663년 백강 전투 등으로 이어집니다. 이를 668년 고구려 멸망, 이후의 나당 전쟁과 나누어 놓으면 세력과 시기가 함께 정리됩니다.

3. 오답 분석

선지의 핵심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① 을지문덕·살수 대첩612년 고구려와 수의 전쟁입니다. 상대가 당이 아니라 수이고, 660년보다 앞섭니다.
③ 윤충·대야성 함락642년 백제가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한 사건입니다. 백제가 멸망하기 전 의자왕 때의 공세입니다.
④ 연개소문·영류왕 시해642년 고구려의 정변입니다. 이후 당과의 전쟁으로 연결되지만 문제의 구간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⑤ 김춘추·나당 군사 연합648년입니다. 660년의 합동 공격을 가능하게 한 선행 사건이지, 그 공격 뒤의 사건이 아닙니다.

⑤는 지문의 나당 협력과 내용이 가까워 특히 헷갈립니다. 하지만 사건의 배경이라는 사실과 두 연도 사이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다릅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648 동맹 → 660 백제 멸망 → 백제 부흥 운동 → 668 고구려 멸망 → 676 기벌포의 순서로 놓아 보세요. 처음부터 모든 연도를 외우기보다 동맹·멸망·부흥·전쟁의 관계를 먼저 잡는 방법입니다.

다음 문제에서 부여풍 대신 복신·도침이나 백강이 나와도 백제 부흥 운동으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검모잠·안승이 나오면 고구려 부흥 운동을 검토해야 합니다.

답을 고른 뒤에는 앞선 사건보다 늦고 뒤의 사건보다 이른지 두 번 확인하세요. 한쪽 경계만 통과한 사건은 구간 문제의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7회 심화 6번.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