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라는 큰 범위만 맞추면 다섯 선지가 모두 비슷해 보입니다. 1910년대와 1920년대, 중일 전쟁 이후를 나누어 읽어야 합니다.

제77회 심화 44번은 국가 총동원법과 학생 동원을 통해 전시 체제를 찾는 문항입니다. 선지에 쓰인 학교 이름도 시기를 좁히는 단서입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7회 심화 44번 문제
국사편찬위원회 · 제77회 심화 44번

1. 결정적 단서: 국가 총동원법·조병창·강제 동원

국가 총동원법은 1938년 제정되었고, 일제는 전쟁 수행에 필요한 인력과 물자를 동원했습니다. 자료의 조병창과 학생 동원도 이러한 전시 체제의 맥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학생의 일상이 군수 생산과 연결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공장이 늘어났다는 경제사 자료가 아니라 식민지 주민을 전쟁에 동원한 상황을 묻고 있습니다.

이때 교육에서는 황국 신민화를 강요했습니다. 학교 명칭과 의례에 대한 선지를 보면 전쟁 동원과 교육 통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2. 정답 근거

정답은 ④ 국민학교에서 황국 신민 서사를 외우는 모습입니다. 국민학교라는 명칭은 1941년부터 사용되었고, 학생들에게 황국 신민 의식을 강요한 전시 교육과 연결됩니다.

황국 신민 서사 자체는 1937년에 제정되었습니다. 따라서 ‘국민학교라는 이름이 생긴 1941년에 서사도 처음 만들어졌다’고 외우면 안 됩니다. 두 정책의 시작 연도는 다르지만 전시 동원기의 모습이라는 점에서 함께 제시될 수 있습니다.

자료에 특정 연도가 없어도 국가 총동원법과 국민학교를 통해 1930년대 후반 이후로 범위를 좁힐 수 있습니다. 시기를 나타내는 제도명을 활용하는 풀이입니다.

3. 오답 분석

선지의 핵심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① 원산 총파업1929년의 노동 운동입니다. 국가 총동원법이 만들어진 1938년보다 앞섭니다.
② 국채 보상 운동1907년 대한제국 시기의 운동입니다. 일본의 차관을 갚아 국권을 지키려는 움직임으로 전시 동원기와 다릅니다.
③ 원각사에서 은세계 공연1908년입니다. 근대 극장의 공연을 일제 말기의 학생 동원과 같은 시기로 볼 수 없습니다.
⑤ 조선 형평사 창립1923년 진주에서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를 위해 창립되었습니다. 1920년대 사회 운동과 연결합니다.

선지의 장면이 모두 근대적으로 보여도 시기는 크게 다릅니다. 극장·노동·학교 같은 소재보다 기관이나 법령의 시작 시점이 더 강한 근거입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전시 체제를 묻는 자료에서는 1937 중일 전쟁, 1938 국가 총동원법, 1941 국민학교 명칭을 기준점으로 삼으세요. 세 사건을 같은 해로 합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가 총동원법과 산미 증식 계획도 구별해 보세요. 식민 지배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전쟁 인력·물자 동원과 쌀 증산 정책은 질문의 초점이 다릅니다.

다음에 사진 속 학생이나 노동자의 모습을 묻더라도 보이는 복장만 추측하지 마세요. 캡션의 법령·학교·공장 이름을 먼저 찾아 시대를 확정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7회 심화 44번.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