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이름에 ‘진흥’이 들어간다고 농민의 처지가 실제로 나아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내세운 명분과 식민 통치의 목적을 나누어 읽어야 합니다.

제77회 심화 39번은 대공황 이후 면화 재배 확대라는 단서로 1930년대를 찾고 같은 시기의 농촌 정책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7회 심화 39번 문제
국사편찬위원회 · 제77회 심화 39번

1. 결정적 단서: 대공황 이후, 남부 지방의 면화 재배

자료에는 공업 원료 확보를 위해 남부 지방에서 면화 재배를 늘린 정책이 등장합니다. 남쪽의 면화와 북쪽의 양 사육을 연결한 남면북양 정책의 맥락입니다.

대공황 이후라는 표현은 1929년 이후로 시기를 좁혀 줍니다. 강압적인 재배 장려와 농민의 피해를 다루는 기사이므로 단순한 자발적 농업 기술 보급으로 읽지 않아야 합니다.

일제강점기의 농업 정책도 시기마다 달랐습니다. 토지 조사 사업, 산미 증식 계획, 1930년대의 농촌 통제 정책을 한 사건으로 합치지 마세요.

2. 정답 근거

정답은 ⑤ 농민의 자력갱생을 내세운 농촌 진흥 운동이 추진되었다입니다. 일제는 1932년부터 농촌 진흥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농촌 진흥 운동은 농가의 생활 개선과 자력갱생을 내세웠지만, 농촌의 불만을 억제하고 식민 통치를 안정시키려는 관제 운동이었습니다. ‘민족의 자립을 위한 민간 운동’으로 표현하면 주체와 성격이 바뀝니다.

남면북양과 농촌 진흥 운동은 같은 정책 이름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서는 두 정책이 1930년대 식민지 농촌이라는 시기와 맥락을 공유한다는 점이 정답 근거입니다.

3. 오답 분석

선지의 핵심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① 조선 민립 대학 기성회 조직1923년의 민족 교육 운동입니다. 대공황 이후의 농촌 정책보다 앞섭니다.
② 메가타의 화폐 정리 사업1905년부터 추진된 대한제국 시기의 사업입니다. 시기와 시행 맥락이 다릅니다.
③ 신한 공사 운영광복 이후 미군정기의 일입니다. 귀속 재산 관리라는 표현으로 일제강점기 이후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④ 회사 설립 허가제의 회사령1910년 공포되었습니다. 1930년대 정책이 아니며, 1920년에는 허가제가 신고제로 바뀌었습니다.

③은 일본인 소유 재산과 관련된다는 이유로 일제강점기로 오해하기 쉽습니다. ‘귀속 재산’과 미군정이라는 배경을 함께 봐야 합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1910 회사령 → 1923 민립 대학 운동 → 1932 농촌 진흥 운동 → 광복 후 신한 공사로 선지를 시간순으로 정리해 보세요. 틀린 선지가 시대를 가르는 기준점이 됩니다.

정책을 읽을 때는 누가 추진했는지, 무엇을 확보하거나 통제하려 했는지, 주민에게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를 나누어 질문하세요. 이름의 긍정적 인상만으로 성격을 판단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다음 문제에 ‘남면북양’이라는 용어 없이 면화·양모·공업 원료가 제시되어도 1930년대의 정책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용어를 설명으로 바꾸어 복습해 보세요.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7회 심화 39번.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