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강화했다는 문장만으로는 조선의 어느 왕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먼저 어떤 전쟁을 겪은 뒤의 상황인지 찾아야 합니다.
제77회 심화 22번은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척화와 주화의 논쟁을 통해 병자호란을 판별하고, 그 뒤의 사실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1. 결정적 단서: 김상헌과 최명길, 청에 대한 대응 논쟁
남한산성에서 청과의 관계를 놓고 김상헌과 최명길이 다른 대응을 주장한 상황은 병자호란과 연결됩니다. 인조 때인 1636년 청의 침입으로 시작되어 1637년 항복으로 이어졌습니다.
김상헌의 척화론과 최명길의 주화론을 구분하되, 인물의 성격을 선악으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시험에서는 청과의 전쟁, 남한산성, 대응 논쟁이라는 사건 단서가 중요합니다.
질문에 ‘이후’라는 조건이 있으므로 선지의 사건이 병자호란보다 늦은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앞선 왕대의 국방 정책은 내용이 비슷해도 제외됩니다.
2. 정답 근거
정답은 ⑤ 효종이 이완을 어영대장으로 삼아 북벌을 준비했다입니다. 병자호란 이후 청에 대한 복수와 군사력 강화를 내세운 북벌론의 흐름에 해당합니다.
효종은 군사력을 강화하고 이완 등을 등용했습니다. 이완의 어영대장 임명은 1652년으로, 인조 때 병자호란보다 뒤입니다. 왕대와 선후 조건이 모두 맞습니다.
북벌을 준비했다는 사실과 실제 대규모 북벌을 실행했다는 주장은 다릅니다. ‘준비’나 ‘추진’이라는 동사를 읽고, 청을 정복하는 전쟁이 실현되었다고 확대하지 마세요.
3. 오답 분석
| 선지의 핵심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사르후 전투에 파병 | 1619년 광해군 때입니다. 명의 요청에 따라 파병한 사건으로 병자호란 이전입니다. |
| ② 두만강 유역에 6진 개척 | 세종 때의 북방 영토 개척입니다. 15세기의 사건이므로 17세기 병자호란보다 앞섭니다. |
| ③ 김시민의 진주성 전투 | 1592년 임진왜란 때입니다. 일본군에 맞선 전투로 청과의 병자호란 이전입니다. |
| ④ 이종무의 쓰시마 정벌 | 1419년 세종 때입니다. 왜구 문제에 대한 대응으로 이완의 북벌 준비와 시기·상대가 다릅니다. |
군사 활동이라는 공통점을 먼저 보면 모두 그럴듯해 보입니다. 이 문항의 첫 기준은 ‘병자호란 이후’라는 시간 조건입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임진왜란–선조, 사르후–광해군, 병자호란–인조, 북벌 준비–효종의 순서로 연결하세요. 전쟁 이름과 왕대를 함께 놓으면 선후가 자연스럽게 정리됩니다.
북벌과 나선 정벌도 같은 말은 아닙니다. 북벌은 청을 대상으로 한 계획이고, 나선 정벌은 청의 요청을 받아 러시아 세력과 싸운 활동입니다. 상대와 실행 여부를 나누어 읽어야 합니다.
다음 문제에서 이완만 제시되어도 효종의 북벌 준비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에는 사건에서 왕을 찾았지만, 복습은 인물에서 사건으로 거꾸로 해 보세요.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7회 심화 22번.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