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 이름이 나오면 유학 사상부터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병산서원에 배향된 인물을 묻는 이번 문항은 임진왜란의 군사·재정 대책을 함께 읽어야 풀립니다.
제77회 심화 21번의 열쇠는 병산서원, 훈련도감, 대공수미법입니다. 서로 다른 분야의 단서가 한 사람을 가리키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1. 결정적 단서: 서원 이름에 전쟁 대책을 겹쳐 읽기
병산서원과 연결되는 대표 인물은 류성룡입니다. 지문에 훈련도감 설치 건의와 대공수미법 주장이 함께 나온다는 점도 류성룡을 가리킵니다.
대공수미법은 공물을 쌀로 대신 내게 하자는 방안입니다. 이를 곧바로 대동법이 전국에 완성되었다는 뜻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전쟁 중 제기한 재정 대책과 뒤에 확대 시행된 제도를 나누어 봐야 합니다.
서원은 인물을 찾는 단서이고, 전쟁 대책은 그 판단을 확인하는 단서입니다. 하나만 보고 고르기보다 두 종류의 정보가 충돌하지 않는지 확인하면 안전합니다.
2. 정답 근거
정답은 ④ 징비록을 저술했다입니다. 류성룡은 임진왜란의 경험을 기록한 징비록을 남겼습니다.
징비록은 전쟁에서 겪은 일을 돌아보고 뒤의 경계로 삼으려는 취지의 기록입니다. 따라서 전쟁을 지휘한 인물의 정책과 전쟁을 되짚은 저술이 연결됩니다. 제목만 따로 외우기보다 저자의 활동과 함께 기억할 수 있습니다.
문제에 장수가 아니라 문신이 등장해도 군사 제도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훈련도감처럼 국가의 군사 조직을 마련하는 일에는 정치·행정 책임자의 역할도 있었습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의 핵심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기대승과 사단칠정 논쟁 | 이황입니다. 성리학의 이론 논쟁을 류성룡의 임진왜란 관련 활동과 구별하세요. |
| ② 소학 보급·현량과 | 중종 때 조광조의 개혁과 연결됩니다. 임진왜란보다 앞선 16세기 전반의 정치입니다. |
| ③ 기축봉사 제출 | 효종에게 북벌 등의 방안을 제시한 송시열입니다. 임진왜란 뒤의 병자호란과 북벌론이라는 맥락을 봐야 합니다. |
| ⑤ 동국지도·백리척 | 조선 후기 정상기입니다. 지리학과 지도 제작의 성과로, 류성룡의 징비록과 분야·시기가 다릅니다. |
①의 이황과 류성룡은 학문적 관계가 있지만 같은 인물은 아닙니다. 사상적 계보가 연결된다는 이유로 스승의 논쟁을 제자의 업적으로 옮기지 마세요.
4. 다음 문제에 적용
류성룡–징비록–훈련도감–대공수미법을 한 묶음으로 정리하세요. 이황은 사단칠정, 조광조는 현량과, 송시열은 기축봉사, 정상기는 백리척으로 각각 구별합니다.
공납 개혁 문제가 나오면 ‘제안’, ‘설치’, ‘전국적 확대’라는 동사에도 표시해 보세요. 비슷한 목표를 가진 주장과 제도를 같은 시점의 완성된 정책으로 오해하는 일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번 문제는 문화 유산에서 인물을 찾고 그 인물의 저술로 이동하는 구조입니다. 서원 이름을 몰라도 전쟁 대책 두 가지로 류성룡을 좁혀 가는 풀이가 가능합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7회 심화 21번.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