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경이 나오면 곧바로 몽골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려의 대장경에는 초조대장경과 재조대장경이 있고, 조판 배경도 구분해야 합니다.

제77회 심화 11번은 귀주대첩의 상대국을 먼저 찾고 그 침입에 대응한 일을 고르는 문제입니다. 불교사 단독 문제가 아니라 전쟁사와 문화사를 연결합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7회 심화 11번 문제
국사편찬위원회 · 제77회 심화 11번

1. 결정적 단서: 현화사비 속 전쟁과 귀주대첩

자료의 현화사비와 전쟁 기록은 현종 때의 거란 침입을 가리킵니다. 귀주대첩은 1019년 강감찬이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전투입니다.

귀주라는 지명만 외우기보다 강감찬·현종·거란을 함께 연결하세요. 안시성은 고구려와 당, 살수는 고구려와 수의 전쟁입니다. 비슷한 승전 이야기라도 국가와 상대가 다릅니다.

질문은 상대 국가에 대한 대응을 묻습니다. 반드시 귀주대첩 뒤에 시작한 일만 골라야 한다는 조건은 없습니다.

2. 정답 근거

정답은 ④ 초조대장경을 조판했다입니다. 고려는 거란의 침입을 겪으면서 불력으로 나라를 지키려는 뜻을 담아 초조대장경 조판을 추진했습니다.

초조대장경 조판은 현종 때인 1011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설명됩니다. 귀주대첩 1019년보다 앞서지만, 거란 침입에 대한 대응이라는 문제의 조건에 맞습니다.

몽골 침입기에 초조대장경 판목이 불탄 뒤 고종 때 다시 조판한 것이 재조대장경입니다. 오늘날 해인사에 전하는 팔만대장경과 연결되는 것은 재조대장경입니다. ‘불력으로 극복’이라는 공통 목적만으로 둘을 합치면 안 됩니다.

3. 오답 분석

선지의 핵심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① 별무반 편성여진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입니다. 윤관의 동북 9성 개척과 연결되며 거란 침입과 구별합니다.
② 화통도감 설치우왕 때 최무선의 건의로 설치되었고 화약 무기와 왜구 격퇴에 연결됩니다. 11세기 거란 전쟁보다 뒤입니다.
③ 진관 체제 정비조선의 지방 군사 방어 체제입니다. 고려 현종 때의 대응책으로 볼 수 없습니다.
⑤ 동녕부 영토 반환원과의 관계 속에서 충렬왕 때 이루어진 일입니다. 거란과 원을 모두 북방 세력이라는 이유로 묶지 마세요.

대장경 두 종류를 구분할 때는 이름뿐 아니라 초조–현종–거란, 재조–고종–몽골의 세 요소를 함께 묶는 것이 좋습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거란 → 현종 → 초조대장경, 몽골 → 고종 → 재조대장경을 양방향으로 읽어 보세요. 왕이나 침입 세력 중 하나만 제시되어도 나머지를 찾는 연습입니다.

전투의 연도와 대응 사업의 시작 연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침입에 대응’과 ‘전투 이후’는 다른 조건이므로 질문의 조사와 연결어를 확인하세요.

이번 문항의 핵심은 비석의 모양을 알아맞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료에 남은 전쟁 단서로 상대국을 특정하고 그 상대에 대한 정책을 연결하는 것입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7회 심화 11번.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