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와 정조를 구분하려고 ‘탕평책’을 외웠는데, 보기에서 두 왕의 정책이 함께 나오면 다시 망설이게 됩니다. 탕평 정치를 추진했다는 공통점만으로는 어느 왕인지 확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5번은 왕의 이름을 직접 보여 주지 않습니다. 대신 개천을 정비한 일과 신문고에 관한 기록을 제시합니다. 여기서는 제도 이름 뒤에 붙은 ‘설치’와 ‘복구’를 구별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문제를 읽으며 어느 표현에서 왕을 찾았는지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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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정적 단서: 신문고를 처음 설치한 왕이 아니다
두 번째 기록의 앞부분만 읽으면 ‘신문고를 설치했다’는 말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그 부분은 조선 초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는 배경입니다. 문제에서 찾는 왕의 행동은 뒤에 나오는 ‘복구하도록 명하였다’입니다.
신문고를 처음 설치한 왕은 태종입니다. 오랫동안 제대로 운영되지 않던 신문고를 되살린 왕은 영조입니다. 같은 제도가 나와도 ‘처음 두었다’와 ‘다시 시행했다’는 서로 다른 인물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익숙한 명사 하나를 찾았다고 읽기를 멈추면, 바로 이 구분을 놓치게 됩니다.
첫 번째 기록도 영조를 가리킵니다. 장마철 범람을 막기 위해 개천 바닥을 파고, 이를 담당할 준천사를 두었다는 내용입니다. 영조 때인 1760년 청계천을 정비하는 큰 준천 사업이 이루어졌습니다. 낯선 기관 이름이 나와도 ‘개천 바닥을 파서 물이 넘치지 않게 한다’는 기능을 함께 읽으면 기억을 꺼내기 수월합니다.
청계천 준천·준천사 → 영조
신문고를 복구·부활 → 영조
따라서 선지에서도 영조의 정책을 찾습니다.
2. 정답 근거: 영조의 법전 정비, 속대전
정답은 ② 통치 규범을 재정비한 속대전을 편찬하였다입니다. 영조는 기존 법전인 『경국대전』 이후의 변화와 법령을 반영하여 『속대전』을 편찬했습니다. 왕을 영조로 확정했다면, 이제 그 왕의 법전 정비 정책을 연결하면 됩니다.
여기서 ‘속대전’을 조선의 법을 처음 만든 책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이미 있는 기본 법전을 바탕으로, 뒤에 생긴 규정과 달라진 현실을 정리한 법전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선지의 ‘통치 규범을 재정비했다’는 설명도 이 기능을 풀어 쓴 것입니다.
가장 헷갈리기 쉬운 보기는 ④의 초계문신제입니다. 영조와 정조가 모두 왕권을 강화하고 정치 운영을 정비했다는 넓은 설명에는 들어맞지만, 초계문신제를 시행한 왕은 정조입니다. 두 왕을 구별할 때는 ‘좋은 정치를 하려고 했다’는 공통 목적보다 실제 제도 이름과 담당 기능을 확인해야 합니다.
3. 오답 분석: 나머지 네 정책은 누구의 것일까?
| 선지의 핵심 | 해당 왕과 구분 근거 |
|---|---|
| ① 나선 정벌·조총 부대 | 효종입니다. 청의 요청으로 조총 부대를 파견하여 러시아 세력과 싸웠습니다. 청을 공격하려던 북벌 구상과, 청의 요청에 따라 참전한 나선 정벌을 같은 전쟁으로 섞지 마세요. |
| ③ 백두산정계비 건립 | 숙종입니다. 1712년 조선과 청의 국경을 정하는 과정에서 세워졌습니다. ‘백성을 위한 정책’이라는 추상적인 설명과 달리, 비석의 이름은 왕을 좁혀 주는 구체적인 단서입니다. |
| ④ 문신 재교육·초계문신제 | 정조입니다. 젊은 문신들을 뽑아 다시 교육하는 제도였습니다. 아직 관리가 아닌 사람에게 응시 기회를 주는 과거제와도 구별해야 합니다. |
| ⑤ 총융청·수어청 창설 | 인조입니다. 총융청과 수어청은 수도와 그 주변의 방어를 맡은 군영입니다. 조선 후기라는 시대 범위는 맞아도 영조가 창설한 기관은 아닙니다. |
이 문제의 오답은 모두 실제 정책을 가져와 왕만 바꿔 놓았습니다. 그러므로 보기 자체가 사실인지와 지문의 왕이 한 일인지를 나눠 판단해야 합니다. ‘초계문신제는 문신을 재교육했다’는 설명이 맞다고 해서, 영조를 묻는 이 문제의 정답이 되지는 않습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명사 다음의 동사까지 읽기
다음 문제에서 ‘신문고’라는 말이 보이면 바로 태종을 고르지 말고, 뒤에 ‘설치’가 오는지 ‘부활’이 오는지까지 읽으세요. 지문의 앞부분이 과거의 상황을 소개하고, 뒷부분에서 문제의 인물이 한 일을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영조와 정조가 함께 떠오른다면, 아래처럼 정책과 기능을 짝지으면 됩니다. ‘탕평’이라는 공통점을 더 크게 외우기보다, 어느 왕에게 붙는 구체적인 제도인지 한 단계 좁혀 보세요.
태종 → 신문고를 처음 설치
영조 → 신문고 부활, 청계천 준천, 속대전 편찬
정조 → 초계문신제, 문신 재교육
정답을 가리고 스스로 설명해 보세요. ‘지문에 신문고가 있어서’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문고를 다시 운영하게 했고 준천사를 두었으므로 영조, 영조의 법전은 속대전’이라고 연결되면 이 문제의 근거를 제대로 잡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