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과 정미7조약은 모두 대한제국의 주권을 빼앗은 과정에 등장합니다. 그래서 외교권 강탈, 헤이그 특사, 군대 해산을 한 덩어리로 외우면 ‘어느 사건 뒤인가’를 묻는 문제에서 순서가 흔들립니다.
제76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35번은 보고서 제목을 고르는 형식입니다. 다섯 인물의 이름을 먼저 비교하기보다, 과제 안내가 정해 둔 시점과 ‘이후’라는 조건부터 잡아야 합니다. 문제를 풀고, 오답 네 개가 어느 시대에 모여 있는지도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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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정적 단서: ‘외교권 강탈’ 다음의 일을 찾는다
과제 안내에는 일제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했다고 나옵니다. 외교권 강탈은 1905년 을사늑약과 연결됩니다. 이 조약에 따라 통감부가 설치되었고, 통감부는 1906년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다음 문장의 ‘이후 전개된 국권 수호 노력’이 답을 고르는 조건입니다. 따라서 나라의 발전이나 자주성을 생각한 활동이라고 해서 모두 정답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제시된 시점보다 뒤의 활동이어야 하고, 국권을 지키려는 노력이어야 합니다.
다른 보고서 제목에 나오는 신돌석·나철·이재명은 이 과제의 성격을 확인하는 보조 단서입니다. 세 인물의 생애를 모두 알아야만 풀 수 있는 구조는 아닙니다. 먼저 안내문으로 시간의 기준을 세운 뒤, 그 기준에 맞는 선지를 찾으면 됩니다.
을사늑약에 따른 외교권 강탈·통감부 설치
→ 그 이후에 전개된 국권 수호 노력
→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
2. 정답 근거: 이상설의 헤이그 특사 활동
정답은 ⑤ 이상설, 고종의 특사로 헤이그에 가다입니다. 고종은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상설·이준·이위종을 특사로 보냈습니다. 을사늑약의 강제성과 부당함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대한제국의 외교권과 주권을 지키려는 시도였습니다.
이 활동은 ‘외교권을 빼앗긴 뒤 어떤 방식으로 대응했는가’라는 과제에 들어맞습니다. 다만 특사들이 회의에 정식으로 참석하여 조약의 무효를 인정받았다고 기억하면 안 됩니다. 공식 회의 참석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특사들은 언론 등을 통해 대한제국의 처지를 알리려 했습니다.
헤이그 특사 사건은 정미7조약과의 순서를 구별하는 기준도 됩니다. 일제는 이 사건을 구실로 고종의 퇴위를 강요했고, 뒤이어 1907년 한일신협약, 즉 정미7조약으로 내정 간섭을 강화했습니다. 군대 해산도 이 과정에서 별도 각서 등을 통해 추진되었습니다. 을사늑약과 정미7조약을 한 사건으로 합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3. 오답 분석: 네 활동은 모두 을사늑약보다 앞선다
| 선지의 핵심 | 인물·시기와 제외 근거 |
|---|---|
| ① 김홍집·조선책략 | 김홍집은 1880년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오면서 『조선책략』을 가져왔습니다. 책을 쓴 사람은 황준헌이며, 김홍집은 이를 국내에 소개한 인물입니다. 을사늑약 이후의 활동은 아닙니다. |
| ② 김옥균·개화당 정부 | 1884년 갑신정변에 해당합니다.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정변을 일으켜 개화당 정부를 수립하고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나라를 바꾸려는 활동이라는 점만 보고 고르면 ‘이후’라는 시기 조건을 놓칩니다. |
| ③ 김윤식·영선사 | 김윤식은 1881년 영선사로 청에 파견되었습니다. 유학생들과 함께 근대적인 무기 제조 기술 등을 배우려 한 활동입니다. 외교권 강탈 이후의 국권 수호 운동과는 시기가 다릅니다. |
| ④ 유길준·조선 중립화론 | 유길준은 1885년 조선의 중립화를 주장했습니다. 조선의 자주성을 확보하려는 구상이지만, 을사늑약이 강요되기 훨씬 전입니다. 취지가 비슷하더라도 시간 조건까지 맞아야 정답입니다. |
이 문제에서는 오답 네 개가 모두 1880년대에 모여 있습니다. 사건마다 ‘옳은 행동인가’를 판단하는 문제가 아니라, 1905년 이후라는 과제 범위에 들어오는가를 판단하는 문제입니다. 연도가 정확히 떠오르지 않더라도 ‘개항 후 개화 정책·갑신정변 무렵’과 ‘을사늑약 이후’를 구분하면 선택 범위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헤이그 특사를 기준으로 앞뒤 나누기
을사늑약과 정미7조약을 구분할 때는 빼앗긴 권한과 사건의 순서를 함께 보세요. 외교권 강탈·통감부는 을사늑약, 내정 통제 강화·일본인 차관은 정미7조약과 연결합니다. 군대 해산은 정미7조약 체결에 뒤이은 과정으로 정리하되, 해산을 규정한 별도 각서와 조약 본문을 구별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1905년 을사늑약 → 외교권 강탈
1906년 통감부 업무 시작
1907년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 퇴위
1907년 정미7조약 → 내정 통제 강화, 뒤이어 군대 해산
문제가 ‘헤이그 특사 파견 이전의 사건’을 물으면 을사늑약이, ‘그 사건을 구실로 일제가 취한 조치’를 물으면 고종 강제 퇴위 등이 연결됩니다. 단서를 알아보는 것에 더해, 질문이 앞을 묻는지 뒤를 묻는지까지 확인해야 합니다.
오늘 기억할 것은 ‘35번은 ⑤’만이 아닙니다. 안내문에서 외교권 강탈을 읽고, ‘이후’라는 조건으로 1880년대 보기들을 제외한 다음, 1907년 헤이그 특사를 고르는 과정입니다. 이 순서대로 설명할 수 있으면 보고서 제목 대신 연표나 대화문으로 나와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