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표 문제는 사건을 모두 자세히 외우는 것보다 양쪽 경계부터 잡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두 사료에 등장하는 인물과 결과를 먼저 연도로 바꿔 보겠습니다.
79회 10번은 혜공왕이 죽은 사건과 장보고가 반란을 일으킨 사건 사이를 묻습니다. 신라 하대 사건이라는 공통점만으로 모든 선지를 포함하면 안 됩니다.

1. 결정적 단서
(가)는 김지정의 반란을 진압하던 중 혜공왕이 피살된 780년의 상황입니다. 신라 중대에서 하대로 넘어가는 경계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나)의 궁복은 장보고입니다. 딸을 왕비로 삼으려던 일이 거부된 뒤 청해진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킨 상황으로, 9세기 중반에 해당합니다. 그 사이 사건을 골라야 합니다.
2. 정답 근거
③ 김헌창이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킨 822년의 사건이 두 경계 사이에 놓입니다. 아버지 김주원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배경과 지방 유력자의 반란을 함께 이해하면 기억하기 좋습니다.
김헌창의 난은 후백제 건국이나 최치원의 건의보다 앞섭니다. 지방 세력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비슷한 표현 때문에 9세기 초와 9세기 말의 사건을 한 시점으로 합치지 않아야 합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 견훤의 후백제 건국은 900년입니다. 장보고의 반란보다 뒤여서 범위 밖입니다. |
| ② | 원광의 걸사표 작성은 7세기 초 진평왕 때입니다. 혜공왕 피살보다 앞입니다. |
| ④ | 최치원의 시무 10여 조 건의는 894년 진성여왕 때입니다. 자료의 뒷경계보다 뒤입니다. |
| ⑤ | 김춘추가 진골 출신 최초로 즉위한 것은 654년입니다. 통일 전 신라의 사건으로 앞경계보다 이릅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먼저 780년→822년→장보고의 반란→894년→900년의 상대 순서를 그려 보세요. 정확한 월일까지 기억하지 않아도 범위에 들어가는 사건을 고를 수 있습니다.
연표 선지가 모두 신라 사건이어도 시대 폭이 수백 년일 수 있습니다. 원광·김춘추는 통일 이전, 김헌창은 하대 초반, 최치원·견훤은 하대 말이라는 구획을 유지하세요.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10번. 정답 ③.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