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통치 정책은 식민 지배 전체를 하나로 외우면 시기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황국 신민 서사와 전쟁 동원이라는 단서로 1930년대 후반을 좁혀 보세요.

79회 43번은 일본에 대한 충성과 전시 동원 요구가 담긴 자료를 제시하고, 같은 시기의 정책을 묻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9회 심화 43번 공식 문제와 다섯 선지
제79회 심화 43번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 결정적 단서

황국 신민 서사 암송과 궁성 요배는 한국인의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고 일본에 충성하도록 강요한 정책의 단서입니다.

국방 헌금과 공출 등 전쟁 수행을 위한 동원 요구까지 함께 나오므로 중일 전쟁 이후의 전시 체제와 연결합니다. 단순히 일제강점기라는 범위로만 판단하지 마세요.

2. 정답 근거

③ 국가 총동원법 제정이 맞습니다. 일본은 1938년 이 법을 제정해 전쟁 수행을 위한 인력·물자·경제의 동원과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민족 말살 정책과 전시 동원은 서로 다른 차원의 정책이지만 전쟁 확대 속에서 함께 강화됐습니다. 자료의 충성 강요와 자원 동원이라는 두 요소를 읽으면 이 선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3. 오답 분석

선지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①신문지법은 1907년 대한제국 시기에 제정됐습니다. 1930년대 후반의 전시 통제 정책과 시기가 다릅니다.
②미쓰야 협정은 1925년의 협정입니다. 만주 지역 독립운동 탄압과 연결되지만 자료의 전시 체제보다 앞입니다.
④토지 조사 사업은 1910년대에 진행됐습니다. 식민지 토지 제도 정비를 1930년대 후반 정책으로 옮기면 안 됩니다.
⑤제1차 조선 교육령은 1911년에 공포됐습니다. 황국 신민 서사와 전시 동원 강화보다 앞선 통치 초기입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1911 제1차 조선 교육령, 1925 미쓰야 협정, 1937 황국 신민 서사, 1938 국가 총동원법으로 시기를 분리하세요.

비슷한 자료에서 창씨개명이나 국민학교가 나오면 1940년대의 정책까지 이어서 확인하세요. 통치기의 명칭만 외우기보다 정책과 연도를 연결하면 선지의 시점 이동을 잡아낼 수 있습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43번. 정답 ③.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