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익현은 대원군을 비판하기도 했고, 개항을 반대하기도 했으며, 뒤에는 의병을 일으켰습니다. 인물 이름 하나만으로 활동 연도를 고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제76회 심화 28번에서는 일본을 서양 세력과 같은 위협으로 보며 강화를 반대하는 주장을 읽어야 합니다. 무엇에 반대했는지가 시기를 가릅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6회 심화 28번 문제
국사편찬위원회 · 제76회 심화 28번

1. 결정적 단서: 일본과 서양을 함께 경계하며 강화에 반대

상소는 일본이 서양 세력의 앞잡이가 되었다며 일본과의 강화를 반대합니다. 최익현의 왜양일체론을 바탕으로 한 개항 반대 주장으로, 1876년 강화도 조약 전후의 상황입니다.

자료에는 과거의 척화 주장과 10년 동안의 상황도 언급됩니다. 하지만 상소가 회고하는 과거와 상소가 실제로 올라간 시기는 다릅니다. 현재 반대하는 대상이 일본과의 강화라는 점을 먼저 보세요.

기정진·이항로라는 이름이 나온다고 상소 전체를 1860년대의 척화론으로 옮기면 안 됩니다. 인용된 앞선 주장과 지금 제기한 주장을 구분해야 합니다.

2. 정답 근거

정답은 ② (나)입니다. (나)는 1871년 신미양요와 1884년 갑신정변 사이이며, 1876년 개항 반대 상소가 들어갑니다.

강화도 조약은 1876년 체결되었습니다. 최익현은 일본과 서양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왜양일체론을 내세워 개항에 반대했습니다. 이 입장과 조약의 시점을 연결하면 구간을 고를 수 있습니다.

1873년 대원군의 정책을 비판하며 고종의 친정을 주장한 활동, 1906년 의병을 일으킨 활동과도 구별해야 합니다. 같은 사람의 생애 안에 서로 다른 시기의 사건들이 있습니다.

3. 오답 분석

선지의 핵심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① (가): 고종 즉위~신미양요1863~1871년입니다. 상소가 회고하는 척화의 배경과 연결될 수는 있지만 1876년은 포함하지 않습니다.
③ (다): 갑신정변~을미사변1884~1895년입니다. 강화도 조약 이후의 개혁과 정세 변화에 해당하는 구간입니다.
④ (라): 을미사변~러일 전쟁1895~1904년입니다. 을미의병과 대한제국 시기를 포함하지만 1876년 상소보다 뒤입니다.
⑤ (마): 러일 전쟁~국권 피탈1904~1910년입니다. 최익현의 1906년 의병 활동은 이 구간이지만 지금 제시된 개항 반대 상소는 아닙니다.

⑤는 인물 자체로 보면 관련이 있는 구간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최익현의 어느 활동인지를 묻기 때문에, 인물의 생애 전체를 한 시점으로 처리하면 안 됩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최익현의 활동을 1873 대원군 비판, 1876 개항 반대, 1906 의병으로 나누어 보세요. 이름을 가리고 행동만 보아도 시기를 구분하는 연습이 됩니다.

상소나 회고록에는 과거 사건을 인용하는 문장이 자주 나옵니다. ‘예전에는’과 ‘지금은’을 나누고, 현재 요청하는 조치가 무엇인지 찾아야 작성 시점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번 문제의 연결은 ‘일본과의 강화 반대 → 왜양일체론 → 1876년 → 신미양요와 갑신정변 사이’입니다. 익숙한 인물보다 상소의 구체적인 요구를 우선해서 읽으세요.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6회 심화 28번.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