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이 세금 때문에 고통받았다’는 사료는 여러 시대에 등장합니다. 그러나 진주에 파견된 안핵사 박규수까지 나오면 1862년으로 범위가 좁아집니다. 이번에는 사건을 찾은 다음 ‘이후’라는 질문 조건을 한 번 더 적용해야 합니다.

제77회 심화 28번은 농민의 고통을 보고한 사료 뒤에 있었던 사실을 묻습니다. 내용상 비슷한 구휼이나 개혁이라도 시간 순서가 맞지 않으면 정답이 될 수 없습니다.

제77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심화 28번 공식 문제, 지문과 다섯 선지
국사편찬위원회 공식 기출 · 제77회 심화 28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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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정적 단서: 진주 안핵사 박규수

박규수가 진주의 상황을 조사하고 환곡·향곡의 폐단을 보고한 것은 1862년 진주농민봉기와 관련됩니다. 같은 해 여러 지역으로 이어진 임술농민봉기의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안핵사는 사건의 원인과 실상을 조사하기 위해 임시로 파견한 관리입니다. 문제의 박규수는 봉기 지도자가 아니라, 현장을 조사하여 조정에 보고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발언자가 사건을 일으킨 사람인지 조사하는 사람인지부터 구분해야 합니다.

지문에는 농민의 고통을 초래한 환곡 문제가 특히 강조됩니다. 전정·군정·환정, 즉 삼정의 운영상 폐단이 농민의 저항으로 이어진 배경입니다.

2. 정답 근거: 삼정의 폐단에 대응하려 설치한 삼정이정청

정답은 ③ 삼정의 문란을 시정하고자 삼정이정청이 설치되었다입니다. 철종 때인 1862년 농민 봉기가 확산되자 정부는 삼정 운영을 바로잡기 위한 기구를 설치했습니다.

‘삼정’은 전정·군정·환정이고, ‘이정’은 잘못된 운영을 바로잡는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이름만 길게 외우기보다 농민 봉기의 배경이 된 문제와 그에 대응한 기구를 연결하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기구를 설치했다는 사실이 삼정의 문란을 근본적으로 해결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선지는 정부의 대응이 있었음을 말할 뿐, 개혁의 성공까지 주장하지 않습니다.

3. 오답 분석: ‘관련 있어 보인다’보다 ‘이후인가’

선지의 핵심해당 시기와 제외 근거
① 홍경래의 봉기·정주성1811년에 시작된 홍경래의 난입니다. 조선 후기 농민 저항이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1862년보다 앞섭니다.
② 신돈의 전민변정고려 공민왕 때, 1366년 전민변정도감의 개혁입니다. 토지와 노비 문제를 다루지만 왕조와 시기가 다릅니다.
④ 제위보 설치고려 광종 때, 963년입니다. 기금의 이자를 활용한 구호 기능이 있었지만, 조선 말 농민 봉기 뒤의 조치가 아닙니다.
⑤ 황사영 백서1801년 신유박해 과정의 사건입니다. 서양 세력의 개입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1862년 진주 상황보다 앞섭니다.

①은 같은 조선 후기 농민 저항이라는 점에서 가장 섞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농민 봉기와 관련된 사실’이 아니라 ‘제시된 상황 이후의 사실’을 고르는 질문이므로 앞뒤 관계가 결정적입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사료 연대 하나를 기준점으로 세우기

지문을 읽고 먼저 1862년을 기준점으로 적습니다. 그 뒤 선지마다 이전인지 이후인지 판단합니다. 모든 연도를 정확히 떠올리지 못하더라도, 고려의 신돈·광종은 조선보다 앞이므로 곧바로 제외할 수 있습니다.

조선 후기의 두 오답은 조금 더 세밀한 비교가 필요합니다. 황사영 백서는 순조 초인 1801년, 홍경래의 난은 1811년입니다. 둘 다 철종 때 임술농민봉기보다 앞섭니다.

마지막으로 진주·박규수 → 1862년 임술농민봉기 → 삼정이정청을 말해 보세요. 인물을 찾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 인물이 등장한 사건과 뒤따른 정부 대응까지 연결하는 연습입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7회 심화 28번. 이 글의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