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 정책을 총괄했다는 설명만으로 군국기무처를 고르면 시기가 늦어집니다. 청에 영선사를 보냈다는 구체적인 활동을 확인해야 합니다.
79회 30번은 삼군부 청사였던 총무당을 사용한 기구를 제시합니다. 같은 건물을 사용했다는 사실과 같은 역할의 기관이었다는 판단은 나누어 보겠습니다.

1. 결정적 단서
1880년에 설치돼 개화 정책을 총괄하고, 청에 영선사를 파견한 기구는 통리기무아문입니다. 기존 삼군부의 업무를 옮겨 외교·통상·군사 등을 담당했습니다.
영선사는 청의 근대 기술을 배우려 파견한 사절단입니다. 일본에 간 조사 시찰단, 미국에 간 보빙사와 목적지는 다르므로 파견 국가까지 함께 정리하면 좋습니다.
2. 정답 근거
② 중앙군을 무위영·장어영의 2영으로 개편한 정책이 통리기무아문과 연결됩니다. 기존 5군영 체제를 정비하고 신식 군사 제도를 도입하던 흐름입니다.
통리기무아문은 단순한 외국 사절 접대 기관이 아니라 국정과 군사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외교 단서로 기관을 찾고 군제 개편 선지를 고르는 연결이 가능합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 이범윤의 간도 관리사 파견은 1903년 대한제국의 정책입니다. 통리기무아문이 활동한 시기보다 뒤입니다. |
| ③ | 동국문헌비고 편찬은 1770년 영조 때입니다. 1880년대 개화 기관과 다릅니다. |
| ④ | 8도를 23부로 바꾼 것은 1895년 제2차 갑오개혁입니다. 통리기무아문의 초기 활동보다 뒤입니다. |
| ⑤ | 대한국 국제 반포는 1899년 대한제국 때입니다. 황제의 권한을 규정한 것으로 시기가 다릅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1880 통리기무아문, 1894 군국기무처, 1897 대한제국이라는 시기별 구획을 만드세요. 모두 개혁과 관련돼도 담당한 정책과 정치 체제가 다릅니다.
사절단은 영선사=청·기술, 조사 시찰단=일본·제도 시찰, 보빙사=미국·외교로 구분하세요. 다음 문제에서 기관 이름이 빠져도 파견 활동으로 시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30번. 정답 ②.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