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의 여러 활동을 이어 묻는 문제는 한 시기의 이름만 외워서는 부족합니다. 한인애국단과 임시정부 활동으로 김구를 찾은 뒤 광복 이후까지 연결해 보겠습니다.
79회 46번은 윤봉길 의거와 충칭 임시정부를 단서로 인물을 식별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의 대표 활동도 함께 분리합니다.

1. 결정적 단서
한인애국단을 조직하고 윤봉길의 1932년 상하이 의거를 이끈 인물은 김구입니다. 충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활동도 김구와 연결됩니다.
윤봉길 의거를 지원한 사람과 의거를 직접 실행한 사람을 구별하세요. 자료는 한인애국단과 임시정부를 이끈 지도자의 활동을 묻습니다.
2. 정답 근거
① 김규식 등과 함께 남북 협상에 참여했다는 설명이 맞습니다. 김구는 1948년 남한만의 정부 수립에 반대하며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남북 협상을 추진했습니다.
자료의 일제강점기 활동에서 인물을 확인했다면 답은 광복 뒤의 활동일 수도 있습니다. 생애의 앞뒤를 연결하되 이승만의 정읍 발언과 김구의 남북 협상을 같은 입장으로 처리하지 않아야 합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② |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단을 조직한 인물은 안창호입니다. 1913년의 활동입니다. |
| ③ | 1944년 조선 건국 동맹을 조직한 인물은 여운형입니다. 김구의 한인애국단과 구별해야 합니다. |
| ④ | 1946년 정읍에서 남한만의 정부 수립을 주장한 인물은 이승만입니다. 김구의 남북 협상 추진과 입장이 다릅니다. |
| ⑤ | 1932년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설립한 인물은 김원봉입니다. 김구와 같은 해 독립운동을 전개했더라도 조직의 주체가 다릅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김구=한인애국단·임시정부·남북 협상, 안창호=흥사단, 여운형=조선 건국 동맹, 이승만=정읍 발언, 김원봉=조선혁명간부학교로 구별하세요.
연도가 같아도 활동 주체가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1932년 윤봉길 의거와 조선혁명간부학교를 인물별로 분리하면 다음 인물 문제에서 선지가 서로 바뀌어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46번. 정답 ①.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