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형식의 사료는 가족 안부 같은 서술 사이에 사건의 핵심 단서가 숨어 있습니다. 구식 군인과 일본 공사관이라는 두 표현을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79회 29번은 구식 군인이 일으킨 소요에 백성이 합세한 상황을 설명합니다. 동학 농민 운동이나 갑신정변과 섞지 않고 임오군란의 결과를 고르는 문제입니다.

1. 결정적 단서
구식 군인들의 봉기와 일본 공사관 습격은 1882년 임오군란의 핵심 단서입니다. 신식 군대와의 차별, 밀린 급료와 지급 과정의 부정이 불만을 키웠습니다.
왕비의 생사도 알기 어렵다고 적힌 대목은 당시 혼란을 보여 줍니다. 하지만 구식 군인이라는 정보가 더 직접적으로 사건을 확정해 주므로 이 단서를 우선하세요.
2. 정답 근거
① 제물포 조약 체결의 계기가 되었다는 설명이 정답입니다. 일본은 공사관 피해 등을 이유로 배상과 공사관 경비 병력 주둔을 요구했습니다.
임오군란 뒤 청의 내정 간섭이 강화된 흐름도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일본과 맺은 제물포 조약, 청군 개입이라는 두 결과가 같은 사건 뒤에 나타났다고 연결할 수 있습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② | 13도 창의군은 1907년 이후 의병 활동과 연결합니다. 임오군란 뒤의 결과가 아닙니다. |
| ③ | 입헌 군주제 수립 요구는 독립협회의 개혁 운동과 연결합니다. 구식 군인의 봉기와 목적·주체가 다릅니다. |
| ④ | 척화비 건립은 1871년 신미양요 뒤 흥선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입니다. 임오군란보다 앞입니다. |
| ⑤ | 고종이 외국 군대의 출병을 요청한 것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 과정과 관련됩니다. 1882년 사건과 다릅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임오군란=구식 군인·제물포 조약, 갑신정변=급진 개화파·14개조·한성 조약, 동학 농민 운동=고부 봉기·전주 화약·집강소로 구분하세요.
결과를 묻는 문제는 사건을 찾은 다음 한 단계 더 가야 합니다. 공사관이 습격됐다는 원인과 배상·경비 병력 주둔이라는 조약의 요구를 연결하면 제물포 조약을 단순 이름 암기에서 벗어나 기억할 수 있습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29번. 정답 ①.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