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료에서 농민이 어려움을 호소하면 일제의 수탈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농민의 생활난은 여러 시대에 나타납니다. 이번 문항에서는 감정적인 표현보다 농민이 갚는 돈과 지주가 받는 증권의 이름이 정책을 알려 줍니다.
제77회 심화 45번은 자료에 알맞은 탐구 주제를 찾는 문제입니다. 농민의 상환 부담과 지주의 지가증권을 한 거래 구조로 읽으면 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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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정적 단서: 농민에게는 상환, 지주에게는 지가증권
지문 속 농민은 상환을 미루거나 토지 분배를 취소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반대편의 지주는 토지 대신 받은 지가증권을 헐값에 팔거나 보상금 지급이 늦어져 어려움을 겪습니다. 두 집단의 처지를 연결하는 제도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농지개혁입니다.
‘농민이 가난했다’만으로는 산미증식계획을 포함한 여러 정책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농지의 분배와 그 대금의 상환, 지주에 대한 증권 보상이 함께 나오면 범위가 좁아집니다.
여기서 상환은 단순한 소작료 납부와 다릅니다. 분배받은 농지의 대가를 갚는 과정이라는 점을 읽어야 합니다. 같은 곡식·돈의 납부라도 어떤 관계에서 내는지가 다릅니다.
2. 정답 근거: 유상매수·유상분배의 양쪽을 보여 주는 사료
정답은 ① 농지 개혁의 전개 과정을 알아본다입니다. 1949년 농지개혁법이 제정되었고, 1950년 개정과 시행령 정비를 거쳐 농지 분배가 진행되었습니다. 기본 방식은 정부가 대상 농지를 보상하고 사들여 농민에게 대가를 받고 나누는 유상매수·유상분배였습니다.
정부는 지주에게 보상을 약속하는 지가증권을 지급했고, 분배받은 농민은 대가를 상환했습니다. 지문의 양쪽 어려움은 바로 이 실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보여 줍니다.
농민의 자작농화를 지향했다는 제도의 목적과, 실제 상환·보상 과정의 부담은 나누어 이해해야 합니다. 이 사료 하나만으로 개혁 전체가 아무 성과도 없었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습니다. 정책의 이름을 찾는 것과 그 성과를 평가하는 것은 별도의 질문입니다.
3. 오답 분석: 토지라는 공통 소재를 시기와 목적별로 나누기
| 선지의 핵심 | 해당 시기·정책과 제외 근거 |
|---|---|
| ② 광주 대단지 사건 | 1971년 도시 이주민의 생존권 요구와 관련됩니다. 여기서 광주는 오늘날 성남 일대의 광주 대단지입니다. 농지 분배와 지주 보상에 관한 자료가 아닙니다. |
| ③ 개발 제한 구역 | 1971년 도입된 도시 확산 억제와 환경 보전 정책입니다. 농지를 보상하여 농민에게 분배하는 제도와 목적이 다릅니다. |
| ④ 산미 증식 계획 | 1920년대부터 일제가 추진한 쌀 증산 정책입니다. 농민 부담이라는 소재는 겹치지만, 대한민국 정부의 지가증권과 유상분배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
| ⑤ 지계아문의 정책 | 대한제국 광무개혁기의 토지 조사와 지계 발급입니다. 토지 소유 관계를 파악하는 사업과, 광복 이후 농지 소유 구조를 바꾸는 개혁을 구분합니다. |
⑤처럼 ‘소유권’이라는 단어가 겹치는 선지는 특히 목적을 확인하세요. 소유 관계를 조사·확인하는 것과 지주의 농지를 매수해 농민에게 분배하는 것은 같은 작업이 아닙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누가 무엇을 주고받는지 그려 보기
자료가 길면 인물의 처지를 세 칸으로 나눠 봅니다. 지주 → 정부 → 농민의 농지 이동이 있고, 정부의 보상과 농민의 상환이 뒤따릅니다. 지가증권이라는 말이 낯설어도 누구에게 왜 주어졌는지를 보면 정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문제가 ‘무상몰수·무상분배’로 바뀌면 북한의 1946년 토지개혁과 비교해야 합니다. 남북 모두 토지 문제를 다루었지만 보상과 분배 방식은 같지 않았습니다.
이번 복습의 기준은 ‘농민이 힘들다’가 아니라 분배·상환·지가증권이 함께 나온다입니다. 역사 자료의 평가 어조에 끌려가기보다 제도가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을 읽어 보세요.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7회 심화 45번. 이 글의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