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조 왕건과 궁예는 같은 후삼국 흐름에 등장하지만, 나라 이름과 정책까지 공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철원과 태봉이라는 지명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부터 확인해 보겠습니다.
79회 9번은 양길의 부하로 활동한 이력과 철원 천도를 제시합니다. 왕건이 훗날 고려를 세웠다는 사실 때문에 자료의 인물을 왕건으로 앞당겨 읽지 않아야 합니다.

1. 결정적 단서
양길의 부하로 세력을 키웠고,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을 태봉으로 바꾸었다는 설명은 궁예입니다.
궁예는 국호를 후고구려에서 마진, 태봉으로 바꾸었습니다. 왕건의 고려 건국은 918년이므로 궁예의 통치 기구를 고려 태조의 정책과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2. 정답 근거
⑤ 광평성 등의 정치 기구를 설치한 활동이 궁예와 맞습니다. 국호 변화와 함께 자신의 정권을 운영할 통치 조직을 정비한 것으로 연결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후삼국 인물별 분류입니다. 궁예의 태봉, 견훤의 후백제, 왕건의 고려를 먼저 세 갈래로 나누면 같은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이 누구에게 해당하는지 선명해집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 공산 전투에서 전사한 대표 인물은 신숭겸입니다. 왕건을 구하고 전사한 일과 연결하며 궁예의 활동이 아닙니다. |
| ② | 경주의 사심관으로 임명된 것은 신라의 마지막 왕 경순왕 김부입니다. 고려에 귀부한 뒤의 일입니다. |
| ③ | 후당·오월에 사신을 보낸 것은 후백제 견훤의 대외 활동과 관련됩니다. 태봉의 궁예와 다릅니다. |
| ④ | 일리천에서 신검의 군대를 물리친 것은 고려 태조 왕건입니다. 936년 후삼국 통일로 이어집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후삼국 인물 문제에서는 국호·수도·전투를 각각 붙이세요. 궁예=태봉·철원, 견훤=후백제·완산주, 왕건=고려·후삼국 통일이라는 기본 틀입니다.
사심관이라는 같은 단어가 나와도 제도를 만든 왕과 실제 임명된 인물이 다를 수 있습니다. 문장의 주어를 끝까지 확인해야 김부의 이력을 왕건이나 궁예에게 넘기지 않습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9번. 정답 ⑤.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