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수탈 때문에 일어났다는 설명은 여러 봉기에 적용됩니다. 어느 지역의 차별인지, 마지막 거점이 어디인지까지 확인해야 사건이 확정됩니다.
79회 27번은 서북민 차별, 가산 군수 정시, 정주성에서의 진압을 제시합니다. 홍경래의 난과 임술 농민 봉기를 가르는 단서를 살펴보겠습니다.

1. 결정적 단서
서북 지역에 대한 차별이 배경으로 나오고 봉기 세력이 정주성에서 진압됐으므로 홍경래의 난입니다. 1811년 순조 때 시작됐습니다.
가산 군수 정시가 봉기군에 맞서다 죽었다는 기록도 같은 사건에 속합니다. 가산·정주처럼 구체적인 지명은 사회 불만이라는 일반 표현보다 사건을 더 좁혀 줍니다.
2. 정답 근거
① 홍경래·우군칙 등이 주도했다는 설명이 정답입니다. 서북 지역의 차별과 세도 정치기의 불만을 배경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한 봉기였습니다.
이 사건을 단순히 모든 농민이 같은 목적을 갖고 일으킨 운동으로만 설명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역 차별과 참여 집단의 성격을 함께 보아야 뒤의 진주 농민 봉기와 구별됩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② | 청군 파병으로 이어진 대표 사건은 1894년 동학 농민 운동입니다. 정주성에서 진압된 홍경래의 난과 다릅니다. |
| ③ | 집강소 설치는 동학 농민 운동의 전개 과정입니다. 전주 화약 뒤 농민군의 개혁 활동과 연결합니다. |
| ④ | 왕이 공주로 피난한 것은 1624년 이괄의 난입니다. 서북민 차별을 배경으로 한 1811년 봉기와 다릅니다. |
| ⑤ | 박규수의 안핵사 파견은 1862년 진주 농민 봉기의 수습과 관련됩니다. 시기와 지역이 다릅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1811 홍경래의 난=서북 차별·정주성, 1862 임술 농민 봉기=진주·삼정 문란·박규수, 1894 동학 농민 운동=전주 화약·집강소로 나누세요.
진압 장소와 수습 관원은 특히 유용한 단서입니다. 봉기라는 같은 단어가 나오더라도 정주성, 진주, 전주가 각각 다른 사건에 붙는다는 점을 확인하세요.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27번. 정답 ①.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