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지킨 단체와 기관은 시기에 따라 이름이 다릅니다. 사전을 편찬한 인물들과 일제가 적용한 치안 유지법을 함께 읽어 조선어학회를 찾겠습니다.
79회 42번은 조선어학회의 활동을 묻습니다. 국문 연구소, 조선어 연구회, 진단 학회와 이름을 섞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1. 결정적 단서
최현배·정인승 등이 우리말 사전 편찬에 참여했고 일제가 이를 탄압한 사건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입니다.
사전 편찬과 언어 연구를 통해 민족 문화를 지키려 한 활동이 단서입니다. 역사 연구 단체의 학술지나 대한제국의 국어 연구 기관과 구별하세요.
2. 정답 근거
④ 한글 맞춤법 통일안과 표준어를 제정했다는 설명이 맞습니다. 조선어학회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마련했고 1936년 사정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간행했습니다.
맞춤법은 말을 어떻게 적을지에 관한 기준이고, 표준어 정비는 지역 등에 따라 다른 말 가운데 공통으로 쓸 말을 정하는 작업입니다. 두 작업은 사전 편찬의 기반이기도 했습니다. 별개의 활동을 무작정 외우기보다 우리말의 사용 기준을 세우려는 목적 아래 연결하면 기억하기 쉽습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 진단 학보를 발행한 단체는 1934년 설립된 진단 학회입니다. 국어 연구 중심의 조선어학회와 다릅니다. |
| ② | 제국신문은 1898년에 창간된 한글 신문입니다. 조선어학회가 발행한 신문이 아닙니다. |
| ③ | 태극서관 운영은 신민회의 활동과 연결됩니다. 조선어학회의 사전 편찬 활동과 구별해야 합니다. |
| ⑤ | 국문 연구소는 1907년 대한제국에 설치된 기관입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어학회와 시기·조직이 다릅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1907 국문 연구소→1921 조선어 연구회→1931 조선어학회→1933 맞춤법 통일안→1942 조선어학회 사건의 흐름을 확인하세요.
가갸날 제정처럼 앞선 연구회의 활동과 이름을 바꾼 뒤 학회의 활동을 구별하세요. 인물이 겹치더라도 당시 조직의 명칭과 연도가 같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42번. 정답 ④.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