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이름 하나만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족 관계와 왕별 업적을 연결하는 문제입니다. 자료의 주인공과 선지의 주인공을 같은 왕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79회 3번은 공주 왕릉원 출토 어금니에 관한 설명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무덤의 주인이 삼근왕이라는 견해가 제시됐다는 표현을, 고고학적으로 확정된 사실이라고 확대해서 읽지 않아야 합니다.

1. 결정적 단서
자료에는 삼근왕이 고구려의 공격으로 사망한 개로왕의 손자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어서 묻는 것은 삼근왕 이후 백제의 왕들이 남긴 사실입니다.
선지를 보면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한 정책이 나옵니다. 이는 웅진 시대의 왕권 강화와 지방 통치 정비를 추진한 무령왕의 업적으로 연결할 수 있습니다.
2. 정답 근거
② 지방의 22담로에 왕족을 파견한 무령왕의 정책이 정답입니다. 개로왕이 한성에서 사망한 뒤 문주왕 때 웅진으로 천도했고, 삼근왕·동성왕을 거쳐 무령왕이 즉위했습니다.
22담로의 목적은 왕실 인물을 지방 거점에 보내 통제를 강화하는 데 있었습니다. 같은 백제 정책이라도 실시한 왕과 앞뒤 시기를 구분해야 자료의 질문에 맞출 수 있습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 고흥의 서기 편찬은 근초고왕 때의 일입니다. 삼근왕 이후의 상황으로 볼 수 없습니다. |
| ③ | 평양성 공격으로 고국원왕이 전사한 것은 근초고왕 때인 371년입니다. 삼근왕보다 앞선 시기입니다. |
| ④ | 동진의 마라난타를 통한 불교 수용은 침류왕 때인 384년입니다. 한성 시대의 일입니다. |
| ⑤ | 광개토 대왕에게 58성·700촌을 빼앗긴 것은 아신왕 때인 396년입니다. 개로왕·삼근왕보다 앞선 사건입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백제 왕 문제는 근초고왕의 대외 팽창, 침류왕의 불교 수용, 무령왕의 22담로, 성왕의 사비 천도를 각각 붙여 기억하세요. 왕의 순서와 업적이 함께 떠올라야 시기 조건을 놓치지 않습니다.
발굴 자료에 견해나 추정이라는 말이 있을 때는 그 조건을 그대로 유지하세요. 시험의 판단 근거와 학계의 확정 사실을 구별하는 습관도 사료 읽기의 일부입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3번. 정답 ②.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