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비안검법과 과거제는 광종, 12목은 성종. 왕 이름과 정책을 짝지어 외웠는데, 막상 두 왕의 차이를 설명하려면 모두 ‘왕권 강화’라는 말로 끝나기 쉽습니다.

두 왕의 개혁은 무엇을 바꾸려 했는지에 주목하면 구별할 수 있습니다. 광종의 정책에서는 신분과 관료 선발, 조정의 위계를 살펴보고, 성종의 정책에서는 정치 운영의 원칙과 지방 행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잡을 핵심

광종은 유력 세력을 견제하고 왕을 중심으로 관료 질서를 세우는 데 힘썼습니다. 성종은 유교적 정치 운영과 지방 통치 체제를 정비했습니다. 두 왕의 역할이 완전히 갈린 것은 아니며, 광종과 성종 사이에는 경종이 재위했습니다.

1. 광종은 왜 노비의 신분을 다시 조사했을까?

고려를 세우고 통일하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은 새 왕조에서도 큰 영향력을 가졌습니다. 이들을 비롯한 유력자들이 거느린 노비는 그 집안의 노동력이었습니다. 신분을 누가 정하고 유지하느냐는 개인의 처지만이 아니라 권력과도 연결된 문제였습니다.

광종은 956년 노비안검법을 시행했습니다. 노비가 된 경위를 조사하여, 본래 양인이었지만 부당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다시 양인으로 돌리는 조치로 이해됩니다. 유력자에게 매여 있던 사람의 신분을 국가가 심사한다는 점에서, 공신 세력을 견제하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다만 이를 ‘모든 노비를 해방한 법’이라고 설명하면 틀립니다. 노비제 자체를 없앤 것이 아니라 신분의 정당성을 따지는 조치였습니다. 관련 기록이 적어 실제로 몇 명이 풀려났는지, 어느 범위까지 시행됐는지를 정확하게 말하기도 어렵습니다.

2. 과거제와 공복 정비는 무엇을 바꿨을까?

958년에는 후주 출신 쌍기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제를 시행했습니다. 조정이 시험을 통해 관료를 뽑는 제도를 마련한 것입니다. 누구와 연결돼 있는가뿐 아니라 시험에서 어떤 능력을 보이는가가 관료 선발의 기준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과거제가 생겼다고 기존 지배층이 즉시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누구에게나 열린 평등한 채용 제도와도 다릅니다. 여기서 중요한 변화는 국가가 시험을 주관하여 인재를 선발하는 길을 제도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960년의 공복 정비는 관리들이 입는 옷을 관료의 지위에 따라 구분한 조치였습니다. 과거제가 사람을 뽑는 방식과 연결된다면, 공복은 조정 안의 위계를 드러냈습니다. 개인의 세력만으로 움직이지 않도록 관료 조직의 질서를 세우려는 흐름으로 함께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성종은 최승로의 건의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성종 때인 982년, 최승로는 시무28조를 올렸습니다. 새 왕이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제안한 정책 건의입니다. 성종이 직접 작성한 법령도 아니고, 28개 조항이 한꺼번에 시행됐다는 뜻도 아닙니다. 현재 내용이 전하는 조항은 22개입니다.

최승로는 지방관을 보내 백성에 대한 부당한 요구를 줄이고, 지나친 행사와 동원으로 생기는 부담을 덜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유교적 정치 운영을 이야기한 것도 왕과 관리가 지켜야 할 원칙을 세우려는 논의였습니다.

불교 행사의 폐단을 비판했다고 해서 불교 자체를 전면 금지하자는 주장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핵심은 국가 운영과 민생에 부담을 주는 관행을 고치자는 데 있었습니다. 성종이 추진한 행정·교육 정비는 이러한 건의와 연결됩니다.

4. 12목은 왕의 명령을 지방까지 연결하는 장치였다

983년 성종은 주요 12개 지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했습니다. 중앙에 관료 조직이 있어도 지역의 일을 기존 유력자에게만 맡겨 둔다면, 조정의 뜻이 지방에서 그대로 실행되리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중앙에서 보낸 관리가 지역을 다스리게 한 것은 이 거리를 좁히려는 조치였습니다.

따라서 12목은 ‘지방을 열두 조각으로 나눴다’는 숫자 암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중요 지역에 지방관을 보내 중앙의 직접 통치를 확대했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전국 모든 고을에 지방관이 배치된 것은 아닙니다. 12목 설치 한 번으로 지방 통치가 완성된 것도 아닙니다. 주요 거점을 중심으로 중앙의 행정력이 미치는 범위를 넓힌 단계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5. 광종과 성종, 정책 이름보다 역할로 구별하기

왕·정책구별할 핵심
광종
노비안검법 · 956년
노비 신분의 정당성 조사
모든 노비 해방은 아님
광종
과거제 · 958년
시험을 통한 관료 선발
기존 지배층의 즉각적 소멸은 아님
광종
공복 정비 · 960년
복장으로 관료의 위계 구분
성종
시무28조 · 982년
최승로의 정책 건의
유교적 정치 운영과 민폐 시정
성종
12목 · 983년
주요 지역에 지방관 파견
전국 모든 고을에 파견한 것은 아님

두 왕을 비교할 때는 광종의 개혁을 신분 조사·관료 선발·위계 정비로, 성종의 개혁을 정치 운영 원칙·지방 행정 정비로 묶어 보세요. 같은 국가 체제 정비라도 손을 댄 제도와 작동 방식이 달랐다는 점이 드러납니다.

고려의 통치는 어느 왕 한 사람이 단번에 완성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시기의 제도 정비가 쌓이면서, 왕과 관료가 나라를 운영하는 방식도 점차 구체화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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