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가 길어도 사건 두 개의 이름을 찾으면 범위가 크게 줄어듭니다. 한쪽에는 이자겸·척준경, 다른 쪽에는 이고·이의방이 등장한다는 점부터 보겠습니다.
79회 14번은 고려 중기의 두 사건 사이에 일어난 사실을 묻습니다. 반란이라는 공통 단어보다 주도 인물과 발생 순서가 중요합니다.

1. 결정적 단서
(가)는 이자겸과 척준경이 궁궐을 침범한 1126년의 이자겸의 난입니다. 왕실 외척의 권력과 관련됩니다.
(나)는 이고·이의방 등이 왕의 명령을 빙자해 문신을 살해한 1170년 무신정변입니다. 따라서 1126년 뒤, 1170년 앞의 사건을 찾아야 합니다.
2. 정답 근거
③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진압한 사실이 맞습니다. 묘청의 서경 세력이 1135년 반란을 일으켰고,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이 진압했습니다.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은 모두 인종 때라는 점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같은 왕 때라도 외척의 권력 장악과 서경 천도·칭제 건원을 둘러싼 갈등은 배경이 다릅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 최우의 정방 설치는 1225년입니다. 무신정변 이후 최씨 정권이 운영한 인사 기구입니다. |
| ② | 쌍기의 건의에 따른 과거제 시행은 광종 때인 958년입니다. 이자겸의 난보다 훨씬 앞입니다. |
| ④ | 만적의 반란 모의는 1198년 최충헌 집권기입니다. 무신정변 뒤의 신분 해방 움직임입니다. |
| ⑤ | 서희의 외교 담판은 993년 성종 때입니다. 거란의 첫 침입과 연결하며 앞경계 이전입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1126 이자겸→1135 묘청→1170 무신정변→1198 만적→1225 정방의 순서를 붙여 보세요. 앞뒤 사건의 주도층까지 적으면 외척·서경 세력·무신·노비·최씨 정권을 구별할 수 있습니다.
선지가 왕 이름 없이 인물만 제시할 때도 같은 방법을 적용합니다. 김부식은 묘청의 난 진압, 쌍기는 광종의 과거제, 서희는 성종의 거란 담판으로 되돌려 놓으면 됩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14번. 정답 ③.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