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를 기억하는 장소가 자료에 나오면 지역과 시기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북촌과 너븐숭이는 제주 4·3의 민간인 희생을 기억하는 장소입니다.
79회 45번은 1948년 제주에서 시작된 충돌과 주민 희생을 제시합니다. 다른 민주화 운동이나 항일 운동의 사건을 섞지 않고 구별하겠습니다.

1. 결정적 단서
남한만의 선거에 반대한 무장대와 토벌대의 충돌, 제주 북촌의 주민 희생은 제주 4·3과 연결됩니다. 자료의 지역과 1948년이라는 시점이 핵심입니다.
충돌을 설명하는 것과 민간인 희생을 정당화하는 것은 다릅니다. 문제에서는 사건을 정확히 식별하고 뒤의 진상 규명·명예 회복 조치를 확인해야 합니다.
2. 정답 근거
⑤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됐다는 설명이 맞습니다. 제주 4·3 특별법은 2000년에 제정됐습니다.
1948년의 사건과 2000년의 진상 규명 제도는 시점이 다르지만 같은 역사적 사건을 가리킵니다. 해당 사건의 특징을 묻는 문제에서는 사후 조치도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3. 오답 분석
| 선지 | 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
|---|---|
| ① | 제암리 학살은 1919년 3·1 운동 때 일제가 주민을 살해한 사건입니다. 제주 4·3의 북촌 희생과 지역·시기가 다릅니다. |
| ② | 미소 공동 위원회는 1945년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의 결정에 따라 1946년과 1947년에 열렸습니다. 제주 4·3을 계기로 구성된 것은 아닙니다. |
| ③ | 허정 과도 정부는 1960년 4·19 혁명 뒤에 들어섰습니다. 1948년 제주 4·3과 구별해야 합니다. |
| ④ | 6·3 시위는 1964년 한일 회담에 반대하며 전개됐습니다. 제주에서 일어난 1948년 사건이 아닙니다. |
4. 다음 문제에 적용
1919 제암리=3·1 운동, 1948 제주=4·3, 1960 허정 과도 정부=4·19, 1964 한일 회담 반대=6·3으로 구별하세요.
지역과 연도를 확인한 뒤 사건의 계기·희생·사후 조치를 분리해 정리하세요. 특별법이라는 표현이 나와도 모든 사건에 같은 법을 붙이지 말고 누구의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을 위한 것인지 읽어야 합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45번. 정답 ⑤.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