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항일 운동에는 3·1 운동 이후에도 여러 흐름이 있습니다. 순종의 장례인지, 나주역의 충돌과 광주에서의 시위인지 출발 장면을 구별해 보세요.

79회 39번은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배경을 보여 줍니다. 운동의 계기와 지원 단체를 연결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9회 심화 39번 공식 문제와 다섯 선지
제79회 심화 39번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 결정적 단서

나주역에서 한국인 학생과 일본인 학생 사이에 일어난 충돌, 광주에서 11월 3일 전개된 시위는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을 가리킵니다.

학생들이 식민지 교육의 차별과 일제 지배에 항의한 운동이라는 성격도 확인하세요. 순종의 장례일이라는 단서가 붙는 1926년 6·10 만세 운동과 출발 사건이 다릅니다.

2. 정답 근거

⑤ 신간회가 진상 조사단을 파견해 지원했다는 설명이 맞습니다. 1927년 결성된 신간회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의 실상을 알리고 지원하려 했습니다.

신간회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계열이 함께 참여한 민족 협동 전선의 단체입니다. 학생 운동을 지원한 활동을 단체의 결성 배경인 정우회 선언과 혼동하지 않아야 합니다.

3. 오답 분석

선지인물·시대·사건과 제외 근거
①조선 형평사가 중심이 된 것은 1923년 형평운동입니다. 백정에 대한 차별 철폐가 핵심입니다.
②통감부의 방해로 중단됐다는 설명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과 연결됩니다. 1929년은 통감부가 아니라 총독부의 식민 통치 시기입니다.
③순종의 장례일을 계기로 일어난 것은 1926년 6·10 만세 운동입니다. 광주학생항일운동과 다릅니다.
④1926년 정우회 선언은 신간회 결성의 배경입니다. 1929년 학생 운동이 앞선 선언을 촉발한 것은 아닙니다.

4. 다음 문제에 적용

1926 순종 장례=6·10 만세, 1926 정우회 선언→1927 신간회, 1929 나주역·광주 학생 시위=광주학생항일운동으로 구분하세요.

단체가 생긴 이유와 그 단체가 나중에 지원한 사건을 따로 정리하세요. 신간회의 결성 배경과 학생 운동 지원을 분리하면 사건의 인과관계가 뒤집히지 않습니다.

공식 원문: 국사편찬위원회 시험 자료실 · 제79회 심화 39번. 정답 ⑤. 해설은 자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