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과 발해는 모두 3성 6부를 두었지만, 권력이 움직이는 방향은 같지 않았습니다. 당에서는 중서성이 명령을 기초하고 문하성이 심의하며 상서성이 6부를 통해 집행했습니다. 반면 발해에서는 상서성에 대응하는 정당성(政堂省)의 장관 대내상이 다른 두 성의 장관보다 높은 서열에 있었습니다. 같은 제도의 뼈대를 가져왔어도 중심축은 달랐던 것입니다.

6부의 이름도 그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당의 이·호·예·병·형·공부 대신 충·인·의·지·예·신부라는 유교 덕목을 사용했습니다. 특히 발해의 예부는 당의 예부가 아니라 형부에 대응한다는 점이 가장 자주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먼저 답부터
  • 발해는 당의 3성 6부를 참고했지만 명칭과 지휘 체계를 바꿨습니다.
  • 정당성의 장관 대내상이 선조성·중대성의 장관보다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 좌사정은 충·인·의부, 우사정은 지·예·신부를 나누어 관할했습니다.

1. 3성의 이름부터 당과 달랐다

발해 당의 대응 기관 주요 역할로 이해되는 기능
선조성 문하성 정책 심의, 왕명 출납·보좌
중대성 중서성 정책 수립, 왕명 문서 작성
정당성(政堂省) 상서성 행정 집행과 6부 지휘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발해가 남긴 역사서가 전하지 않아 세 관청의 구체적인 업무를 직접 보여 주는 기록은 부족합니다. 위의 대응 관계는 『신당서』에 적힌 관직명과 당의 제도를 비교해 이해한 것입니다. 따라서 “선조성이 당의 문하성과 모든 일을 똑같이 했다”기보다 서로 비견되는 기관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2. 가장 큰 차이는 정당성의 위치였다

당에서는 중서성이 정책과 황제의 명령을 기초하고, 문하성이 이를 심의하며, 상서성이 6부를 통해 통과된 명령을 집행했습니다. 발해도 기능상 이와 비슷한 세 관청을 두었지만 관직의 서열은 다르게 나타납니다.

발해는 이 관계를 다르게 짰습니다. 정당성의 장관인 대내상을 선조성의 좌상과 중대성의 우상보다 높은 자리에 두었습니다. 게다가 실제 행정을 맡은 6부도 정당성 아래에 배치했습니다. 문서를 만들고 심의하는 두 관청보다 집행을 총괄하는 정당성에 힘을 모은 구조였습니다.

다만 서열이 한 줄로만 이어진 것은 아닙니다. 정당성의 좌사정·우사정은 선조성·중대성의 좌평장사·우평장사보다 아래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정당성이 다른 두 성을 모든 면에서 일방적으로 지휘했다고 단순화하기는 어렵습니다.

정당성 중심의 구조는 왕권 중심의 국정 운영을 중시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도를 이렇게 짠 목적과 실제 회의·집행 방식은 직접 확인되지 않습니다. 남은 기록으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핵심은 대내상의 서열이 좌상·우상보다 높았고, 정당성이 6부를 거느렸다는 사실입니다.

3. 충·인·의·지·예·신부는 무슨 일을 했을까

발해의 6부는 유교 덕목을 관청 이름으로 사용했지만, 담당 업무는 당의 상서 6부와 대체로 대응했습니다. 『신당서』는 6부의 세부 업무를 직접 설명하지 않으므로, 아래 기능은 당의 대응 관서와 발해의 하부 관청명을 토대로 복원한 내용입니다.

발해 6부 당의 6부 담당 업무로 이해되는 기능
충부이부문관의 인사·평가·훈봉
인부호부호적·토지·조세·재정
의부예부의례·제사·교육·외교
지부(智部)병부무관 인사·군대·군마·무기
예부형부법률·소송·재판·감옥
신부공부건축·수리·교통·산림·수공업

이 표에서 시험에 가장 잘 걸리는 부분은 의부와 예부입니다. 발해 의부는 당 예부의 일을, 발해 예부는 당 형부의 일을 맡았습니다. 이름에 ‘예’가 들어간다고 당의 예부와 바로 연결하면 틀리기 쉽습니다.

4. 6부는 좌사정과 우사정이 세 부씩 나눠 맡았다

대내상 아래에는 좌사정과 우사정이 있었습니다. 좌사정은 충부·인부·의부를, 우사정은 지부·예부·신부를 관할했습니다. 인사·재정·의례를 한쪽에, 군사·법률·토목을 다른 쪽에 묶은 이원적인 업무 체계였습니다.

좌사정

충부(인사) → 인부(재정) → 의부(의례·외교)

우사정

지부(군사) → 예부(법률) → 신부(토목·수리)

좌6사와 우6사는 각각 본사 3개와 지사 3개로 이루어졌습니다. 충부에는 작부, 인부에는 창부, 의부에는 선부가 붙었고, 지부에는 융부, 예부에는 계부, 신부에는 수부가 붙었습니다. 본사 6개와 지사 6개를 합하면 12사입니다. 당 6부의 24사와 비교하면 간소한 편제였지만, 왜 이렇게 구성했는지는 기록으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5. 왜 관청 이름을 유교 덕목으로 바꿨을까

충·인·의·지·예·신은 사람이 지켜야 할 도덕적 가치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발해는 당의 업무 체계를 받아들이면서도 관청 이름에는 이런 유교적 성격을 드러냈습니다. 특히 관리의 인사를 맡은 첫 번째 관청을 충부라고 부른 점을 왕에 대한 충성을 중시한 흔적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다만 명칭만으로 실제 인사 원칙까지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 변화는 단순한 번역이 아닙니다. 당의 이·호·예·병·형·공부는 담당 분야가 이름에 비교적 직접 드러나지만, 발해는 같은 업무 체계를 충·인·의·지·예·신이라는 다른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제도의 기능은 배우되 조직의 이름은 새로 만든 것입니다.

6. 문왕대에 정비된 3성 6부,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었다

발해의 3성 6부는 문왕대에 정비된 것으로 봅니다. 다만 정확한 설치 연도와 개편 과정은 알 수 없습니다. 문왕은 즉위 다음 해인 738년 당에 사신을 보내 『당례』와 여러 역사서를 베껴 갈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과 교류하며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제도와 지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전해지는 발해 관제는 당의 것과 달랐습니다. 3성의 이름과 장관 서열을 달리했고, 6부를 좌우 두 계통으로 나누었으며, 당보다 간소한 12사 체계를 두었습니다. 발해가 해동성국이라 불린 배경을 영토 확장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넓어진 영역을 움직이려면 군대뿐 아니라 명령을 만들고, 집행하고, 세금과 인사를 관리하는 조직이 필요했습니다.

발해의 독자성은 당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필요한 제도를 적극적으로 배우고, 권력 구조와 명칭을 발해의 현실에 맞게 다시 배열했다는 데 있습니다.

헷갈리기 쉬운 질문 세 가지

발해의 정당성은 당의 중서성에 해당하나요?

아닙니다. 정당성은 당의 상서성에 비견됩니다. 선조성은 문하성, 중대성은 중서성에 대응합니다. 다만 발해에서는 대내상이 세 성의 장관 가운데 최고 서열이었고, 정당성이 행정 집행의 중심이었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발해 예부는 의례를 담당했나요?

발해 예부는 당의 형부에 대응하여 법률·소송·재판 등을 맡았던 것으로 봅니다. 의례·제사·교육·외교는 당 예부에 대응하는 발해 의부의 업무로 이해됩니다.

선조성과 중대성의 기능은 기록으로 완전히 확인되나요?

구체적인 업무 기록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신당서』에 남은 관직명과 당의 관제를 비교해 선조성은 문하성, 중대성은 중서성과 비견된다고 이해합니다. 그래서 두 관청의 세부 업무를 설명할 때는 ‘담당했다’고 단정하기보다 ‘그 기능을 했던 것으로 본다’고 표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또한 『신당서』에 정리된 관청 이름이 발해가 존속한 200여 년 동안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이 제한적이므로, 이 글의 표는 현재 가장 널리 알려진 발해 중앙 관제의 기본형을 보여 줍니다.

출근길 1분 기억법

“정당성이 중심, 좌사정은 충·인·의, 우사정은 지·예·신.”

이름은 발해식이지만 업무는 당의 6부와 대응합니다. 의부가 당의 예부, 발해 예부가 당의 형부라는 순서까지 잡으면 표를 거꾸로 외우지 않습니다.